존중하기.
아침이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모래알처럼 모여듭니다.
어떤 대상이
또렷하게
다가오다가도
다시 흩어져 버립니다.
찾으면 무엇 하나
울고 웃던
이야기(공감)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바른 생각과 행동도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데
철없던 날들의
초상들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여겨집니다.
규칙과 질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현실을
현명하게 적응하는 이유일 뿐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놓고
수많은 시간의 물음은
미해결로 남았지만
모든 규제와 법칙은
누군가(리더)의 편리가
작용되고 있을 뿐
내가 만든 것은
아닌가란
의구심만 이어집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만들어진
각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억압 하는 것부터 배웁니다.
억압이 정신건강에 나쁘다면서
우린
순수 자아 속에
억압을 먼저 훈련 받습니다
억압과 억제는 다릅니다.
억압은
타인으로부터
눌림을 당하는 것이고
억제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참는(조절) 겁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건강한 것은 억제입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참는(통제)것보다
누군가의 강한 힘으로부터
억압을 당하며
순종을 길들여갑니다
우린 언제부터
알 수 없는 순간 속에서
당연하게
길들여지고 있는 겁니다.
잘 길들여진
기계나 동물은
모두 사람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 말입니다
우린 착하다. 말잘 듣는다.
(착한아이 컴플렉스) 말에 구속되어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어느 날 문득
우울 감으로 힘들어질 때
사람들은
자기(자아)를 찾아보라 합니다.
몇 십 년을
가정과 사회로부터
잘 길들여진 자아를
한 순간 스스로
갑자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아를 찾으려다
더 큰 쓰나미에
좌초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답니다.
차라리
어린 시절부터
진정한 자아를
찾는 훈련을 받았더라면
적어도 손실을 적었을 겁니다.
이미 잘 깉 들여진
성인이 된 어린 자아를
어설프게 진정한 나를 찾으려다
도리어 우울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례를 볼 때면
그 안타까움은 표현 할 수 없답니다.
정신건강에 좋은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봅니다.
정신의 세계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정신이 건강하려면
긍정적인 사고가 바탕이 되어
모든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와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긍정적인 사고란
하루아침에
정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타고 난
긍정적인 사고와
어린 시절부터
긍정적인 부모로 부터
주고받으며
존재를 인정 받아가며
자연스럽게 스미듯
몸에 물들어 가는 겁니다.
인간은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다죠.
유전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반복적인 교육과
훈육을 통하여
서서히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찾아가는 거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숱한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
반복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눌 줄 알게 된답니다.
매일 해가 뜨지만
햇살에도 밝음이 다르듯
사람의 빛 또한
발산(성격)하는 색이 다릅니다.
획일적인
훈육과 교육이
오히려
개성을 묵살 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적절히 존중하며
개인차를 인정할 줄 아는
어른들의 훈육이
한 개체를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고 봅니다.
누구에게나
존중받는 사람으로 성장을 한다면
얼마나 행복 할까요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존중하는 관계를 맺는다면
성숙한 관계를
이어 갈수 있는 겁니다.
좋은 사고란
나와 네가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을
한껏 누리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할 때
진정한 자유를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230824
ㅡjuli의 창가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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