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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골 할머니이야기 (실화동화)

아동문학/창작 그림동화

by 해맑은 미소 2010. 5. 1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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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소 골 할머니 이야기. ( 실화 동화 )

                                                                                                                  -정경미 -



텃밭에 상추를 뜯던 할머니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툴툴 털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흙 묻은 손으로 수도꼭지를 틀어 상추를 씻으며 혼잣말로 두런거리신다.

‘영감, 조금만 지다리랑 께.’

투박한 할머니의 손 놀림은 부산스럽게 점심 상을 준비하고 계신다.

흙벽에 걸려 있는 낡은 밥상 위에 밭에서 따온 상추와 고추를 씻어 올린 뒤,

뒤란에 있는 커다란 된장독을 열고.

누런 바가지에 노란 된장을 한 주걱 푼 다음 갖은양념을 한다.

할머니는 혼자서 한참을 이것저것 소박한 점심상을 차린다.

 

다 차려진 밥상을 들고 마루로 나가시더니

 방으로 들어가 빛바랜 작은 액자를 들고 나온다.

할머니는 들고 나온 액자를 밥상 맞은 편에 올려 두고

 숟가락을 들며 또 다시 혼잣말로 두런거린다.

‘영감 상추쌈에 식사 하시구려’

할머니는 오래된 습관처럼 밥 한술 뜨고 사진 한번 보고.

반찬 한 젓가락에 먼 산 한번 보면서 쓸쓸히 점심상을 물린다.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입에 물더니

깊은 한숨을 들어 내쉬며

허공을 향해 하얀 연기를 내 품어 내듯,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1950년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할머니 나이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였고, 할아버지는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강 건너 살던 할아버지는 부잣집 외아들이었다,

할머니도 무남독녀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양가 집 부모님끼리 한 약속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용소 골을 떠들썩하게 올린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한동안

마을사람들의 입줄에서 감칠 맛나게 오르내렸다.


“ 금분이가 시집을 가더니 얼굴이 달덩이 같구 만.”

“ 신랑각시가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용소 골은 한 동안 봄날 따사로운 햇살처럼 평화로웠다.


“ 김 용길 씨 편지요.”

“ 아니, 이건 입대통지서잖아요!”

할아버지에게 군에 입대하라는 통지서였다.

한참.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밝은 대낮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마을회관 앞이 소란스러웠다.

부대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두 대의 군 트럭에 나뉘어 타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긴 줄에 끼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멀어져 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할머니는 얼떨결에 할아버지와 헤어진 후

시부모님을 도와 열심히 농사일을 거들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저, 아래 논에 물을 받아 두어야 한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새참을 먹고 있을 때였다.

 

군대에 간 할아버지 편지를 받게 되었다.

할머니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편지봉투 안에는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의 늠름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멋있을 수가 있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참동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편지에는 훈련을 잘 받고 있다는 내용과 연로하신 부모님을 걱정하는 안부와 함께

 할머니가 퍽 보고 싶다는 사연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편지를 읽는 동안 시부모님도 눈시울을 적시며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정성껏  접어서 속바지에 넣고 다니며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사진을 꺼내어 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쟁이 일어났다.

 용소 골 사람들도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했다.

“저는 여기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먼저 떠나세요.”

 

할머니는 군대에 간 할아버지 걱정에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남한이 점점 불리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도 용소 골을 떠나 피난을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할머니 일행이 괴산에서 며칠 머물고 있을 때 한통의 전보가 왔다.

 

할아버지가 소속된 부대가

북한군에게 폭격을 맞아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전갈이 왔다.

“ 흐 흐 흐, 믿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행방불명이 된 할아버지 소식을 믿지 않았다. 

 

1953년 7월. 3년간의 지루한 전쟁은 끝이 났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 소식을 기다리며 다시 용소 골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전쟁이 휩쓸고 간 고향 마을은 폐허로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마을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부서진 집을 수리하고 끊겨진

다리를 고치며 마을을 정리하는데 쉴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내 집을 찾을 수 있어야 혀.”

할머니는 무너진 담장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복구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할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할머니에게는자식 하나 없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을 잊지 못하고

매일매일 군복 입은 할아버지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면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쓸쓸함을 달랬다.

 

그런 할머니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사람들은

자식도 없고 하니 재혼을 해서 새로 가정을 꾸리라 했지만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언젠가는 꼭 돌아 올 할아버지를 그리며

보내온 시간이 어느덧 육십년이 다 되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이 사진을 보면 괜찮아져.”

할머니는 낡은 사진을 꺼내어 조심조심 어루만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쓰다듬고 어루만졌던지

 할아버지 사진은 낡을 대로 낡아

 할아버지의 젊은 날의 모습이라고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빛바랜 할아버지 사진을 애지중지하며 긴 세월을 보내왔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하늘이

 비라도 내릴 듯이 잔뜩 찌푸린 칠월의 오후다.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텃밭의 채소들이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도 내 죽을 때까지 이 집을 지켜야 혀”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고르며 흙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은 퍼석한 마루를

물걸레로 훔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살아있는 동안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겨’

할머니는 팔순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집안 단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돌아 올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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